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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깨달음에 차이가 있는가?
• 작성자 : 붓다야나  (211.114.***.135) 포인트레벨 : 37 llllllllll
• 작성일 : 2014-10-11 09:34:34 조회 : 3,088  |  추천 : 507

지혜와 깨달음에 차이가 있는가?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다르다. 지혜는 해탈이 아니다. 지혜를 이룬 사람은 그 결과로서 해탈에 도달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지혜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7청정(淸淨)」으로 명명(命名)하고 있을 뿐, 7가지 지혜의 단계라고는 쓰고 있지 않다. 지혜가 나타나는 만큼 마음이 정화(淨化)된다. 필요한 것은 이 정화(淨化)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ñāṇadassana-visuddhi(냐-냐닷사나 위숫디, 지견정정 智見淸淨)라는 지위에 도달해서 해탈을 경험한다.

 

  7가지의 청정에 대하여 지혜의 제1인자인 사리풋다 존자와 푼나·만타ー니풋타 존자의 대화가 중부경전24『Rathavinỉta-sutta 전차경 傳車經』에 기록되어 있다.

 

  사리풋다 존자는 이와 같이 질문하신다.「벗이여! 당신은 계(戒)청정(淸淨)을 목표로 해서 여래(如來)의 슬하에서 수행하고 있습니까?」푼나 존자는 대답하신다.「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리풋다 존자는 심(心)청정(淸淨), 견(見)청정(淸淨), 도의(度疑)청정(淸淨), 도(道)비도(非道)지견(智見)청정(淸淨),행도(行道)지견(智見)청정(淸淨),지견(智見)청정(淸淨)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하신다. 푼나 존자는「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신다.「그럼 당신은 무엇을 목표로 해서 수행하십니까?」라고 물으시자,

 

 「anupādāparinibbānatthaṃ 무집착의 완전한 열반을 목표로 해서 수행합니다.」라고 대답하셨다. 다음의 대화는 이와 같이 전개된다. 사리풋다 존자,「계(戒)청정(淸淨)은 무집착의 완전한 열반(涅槃)일까요?」푼나 존자,「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라는 흐름으로 푼나 존자는「7번째인 지견(智見)청정(淸淨)도 무집착의 완전한 열반은 아닙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이 이상 청정의 계위(階位)는 없으므로 사리풋다 존자는「설명해 주십시오.」하고 요청하신다.

 

  푼나 존자께서 여기서 일곱 마차의 비유를 드신다. 어느 목적지에 가고 싶은 왕이 7대의 마차를 준비시켰다. 첫 번째의 마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면, 거기에 두 번째의 마차가 준비되어 있다. 그것을 타고 다시 갈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가서 세 번째의 마차로 갈아탄다. 그것을 되풀이해서 일곱 번째의 마차를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것은 훌륭한 비유이다. 지혜는 해탈이 아니다. 7청정은 수행자를 해탈로 운반하는(성장시키는) 탈 것이다. 여기서 탈 것은 지혜를 의미한다.

 

  7청정의 첫째와 둘째 이외의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뇌의 개발이라는 현대적인 언어를 사용해서 설명하고자 하면 다음과 같은 해설이 가능할 것이다.

 

  보통 인간의 대뇌는 원시뇌(原始腦)의 지령(指令)을 받아서 활동한다. 원시뇌란 이해능력이 없는 장기(臟器)이다. 존재욕(存在欲), 두려움(怯)·공포, 성냄(怒) 등의 감정이 생겨나는 장소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탐(貪)·진(瞋)·치(痴)가 활동하는 장소이다.

 

  계(戒)청정(淸淨)에 도전하는 것은 원시뇌의 힘을 억제하고 대뇌의 힘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올바르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의도적으로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대뇌의 일이다. 계율을 완전하게 지키기에 성공했다는 것은 탐(貪)·진(瞋)·치(痴)의 충동을 억제했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심(心)청정(淸淨)으로 들어간다. 명상해서 사마디를 이룰지, 사마디에 닮은 상태를 이룰지의 여부다. 사마디에 도달하면 오개(五蓋)가 수면상태로 된다고 설명되어 있다. 오개(五蓋)의 내용도 탐(貪)·진(瞋)·치(痴)와 동일하다.

 

   뇌로 설명한다면 원시뇌가 잠들고 대뇌만이 일하게 된 상태이다. 마음에 감정이 솟구쳐 오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망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알아차림의 수행을 계속하면 견(見)청정(淸淨)에서 지견(智見 : 지혜와 식견)청정(淸淨)까지 성장해 간다.

 

  일반 상식 수준에서는 원시뇌가 잠드는 경험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의 등급을 일반상식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무집착의 완전한 열반(涅槃)이라는 경험은 일곱 번째인 지견(智見)청정(淸淨)의 다음에 일어난다.

 

  일곱 번째의 지견청정이란 대뇌로 개발이 가능한 구극(究極)의 수준이다. 비로소 대뇌가 생명(命)의 지배권을 획득한다. 탐(貪)·진(瞋)·치(痴)의 충동으로 살아가면서 고난에 찌든 생활은 두 번 다시없다.

 

  이와 같이 설명하면 1회의 수행으로 완전한 해탈에의 도달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시뇌도 그렇게 간단히 항복을 인정할 기분은 아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깨달음은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라는 4가지의 단계로 완성한다.

 

  최초의 깨달음으로 죄를 범할 때까지 격렬해지는 탐(貪)·진(瞋)·치(痴)의 감정이 힘을 잃는다. 자신이라는 혼(魂)이 있다는 착각도 없어진다. 그러나 자신이라는 실감(實感)은 남아 있다. 육근(六根)에 들어오는 대상에 대하여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라는 구별도 있다.

 

  예류과의 깨달음에 도달한 수행자는 더욱 수행에 정진하여 원시뇌의 나머지 기능도 정지시킨다. 기능을 정지시킨다고 해서 뇌가 죽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위없는 최상의 평온을 느끼므로 뇌세포는 원기 있게 활동한다. 해탈에 도달한 사람의 뇌는 결코 쇠퇴하는 일이 없다.

 

  이 설명은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해탈의 과정과 뇌의 기능을 연계해 본 설명에 불과하다. 완전히 핀트에서 벗어난 것이 될 가능성도 있다. 대충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실천하는 수행자에게 이와 같은 설명은 쓸데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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