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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후(後)의 관찰
• 작성자 : 붓다야나  (211.114.***.135) 포인트레벨 : 37 llllllllll
• 작성일 : 2014-10-17 20:59:39 조회 : 1,477  |  추천 : 273

§37 paccavekkhaṇā-ñāṇa-pavattana

Puna bhavaṅgaṃ vocchindivā paccavekkhaṇa-ñāṇa-pavattanti.

§38 paccavekkhaṇā-ñāṇa 19

Maggaṃ phalañ ca nibbānaṃ, paccavekkhati-paṇḍito,

hīne kilese dede ca, paccavekkhati vā na vā.

Chabbisuddhi kamen' evaṃ, bhāvetabbo catubbidho,

ñāṇadassana-visuddhi, nāma maggo pavuccati.

Ayam ettha visuddhi-bhedo.

§37 관찰지의 생기 §38 관찰지 19

「또한 유분심(有分心)을 사단(捨斷 끊음)하고, 관찰지(觀察智)가 생기(生 起)한다.

현자는 도심(道心), 과심(果心), 열반(涅槃)을 관찰한다. 사단(捨斷)한 번뇌 와 남은 번뇌를 관찰하는 수행자도 있다.

이와 같인 6청정(淸淨)의 순서에 따라〔최후의 7번째로〕수습해야할 4종의 도(道 : 四向四果)가 지견(智見)청정(淸淨)이다.

이상으로 여기(업처 정리의 장)에서〔7〕청정(淸淨)의 구별이 설해졌다.」

 

  후(後)의 관찰

 

  과심(果心)이 끝나면 paccavekkhaṇā-ñāṇa(관찰지)가 생겨난다.「자신의 마음에 무엇이 일어났는가」하고 관찰하게 된다.

 

  사마타명상의 경우에도 선정에 도달한 명상이 끝나고 나서는 보통의 인식 흐름으로 들어온다. 그 때 선정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가 하고 관찰해야 한다.

 

  위빳사나 명상은 처음부터 관찰명상이다. 위빳사나 수행의 결과로서 해탈에 성공한 수행자는 그 선정이 끝나면 곧바로 특별히 어드바이스하지 않아도 반드시 관찰을 시작한다.

 

  사마타 명상으로 도달한 선정과 위빳사나 명상의 선정은 결코 닮아 있지 않다.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마음은 일체 현상의 차원을 부술 뿐만 아니고 번뇌도 근절한다.

 

   도심(道心)과 과심(果心)은 일체의 개념이 나타나지 않는, 그들을 초월한 상태이므로 수행자는 해탈을 경험할 뿐이다. 번뇌가 없어졌는지의 여부, 해탈에 도달했는지의 여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과심(果心)이 일어난 후 마음은 유분심이 된다. 그러고 나서 보통의 인식과정으로 돌아온다. 보통의 인식과정이라고 하더라도 오근(五根)으로부터 얻은 정보로 혼란해 있는 마음의 수준은 아니다. 강렬한 집중력으로 관찰능력이 빼어난 마음이다. 그 능력을 살려서 관찰한다. 직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관찰한다.

 

  텍스트에서는 magga(도), phala(과), nibbāna(열반), 근절한 번뇌, 남은 번뇌를 관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순서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순서로 관찰할 것이다.

 

  깨달음의 경험은 특별하고 대담한 경험이다. 그 때는 마음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수행자는 인식의 흐름이 돌아오면 우선 그것을 관찰할 것이다.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만들어진 것도 아닌 완전한 평안함이라고 말해야 할 열반은 이 순간 전에 일어난 경험이라고 관찰한다.

 

  그러고 나서 지금 현재의 마음을 관찰한다. 무엇을 발견해서 열반에 들었는가를 관찰한다. 그러면 자아(自我)는 존재하지 않고 성립하지 않으며, 인연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에 대한 착각에 불과하다는 발견에 이어서 열반을 경험했다고 안다.

 

  요컨대「유신견(有身見)」이 사라진다. 수행자는 불도(佛道)가 올바른 도(道)임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므로「의(疑)」도 없다.

 

  해탈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석가모니께서 설하신 관찰방법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苦)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관찰실천이 올바른 방법이 된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혼(魂)을 정화하기 위해, 진아(眞我)를 체험하기 위해, 등등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세상에는 온갖 방법이 설해져 있다. 수행자는 그것들이 모두 착각이라고 이미 실증(實證)을 했다. 그러므로「계금취(戒禁取)」도 없다.

 

  이 관찰이 끝나면 자신의 수행은 완료된 것일까 하고 관찰한다. 아직 몇 가지의 번뇌가 남아 있고, 아직도 감정이 솟구쳐오를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남은 번뇌의 관찰이다.

 

  남은 번뇌의 관찰이 깨달음에 도달해서 즉시 가능한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해탈에 도달한 충격으로부터 냉정을 기한 후에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늦든, 빠르든, 이 관찰을 하지 않으면 상위의 깨달음을 목표로 해서 수행할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깨달음을 관찰하고 나서 수행자가 행하는 관찰은 이것으로 끝이다.

 

  7가지 청정(淸淨)의 7번째는 지견(智見)청정(淸淨)이라 한다. 관찰을 끝내고 지견(智見)청정(淸淨)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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